과학철학 91

다시 시공간의 철학으로

결국 나는 다시 시공간의 철학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이렇게 돌아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 학자는 라이헨바흐다. 그러나 리처드 뮬러와 리 스몰린의 책을 번역한 것은 나에게 시공간의 철학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큰 힘을 주었다. 뮬러는 실험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스몰린은 이론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시간 흐름의 실재성을 옹호한다. 그리고 시간 흐름의 실재성은 라이헨바흐의 시공간 철학에서 옹호하는 관점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라이헨바흐의 논리경험주의 시공간 철학으로 돌아가는 것은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공간의 철학을 실체론과 관계론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전통은 제법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미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여 성공적인 이론으로 자리 잡은 이상, 실..

과학철학 2022.09.25

과학에 대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과학에 대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 쓰인 내용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많은 문제를 빨리 풀라고 하거나, 의미를 알 수 없고 어렵기만 한 문제들을 풀라고 했다. 그냥 나는 그게 성에 안 찼다. 적성에 맞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과학에 관한 책들을 빌려 읽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는 그런 이유로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하이젠베르크에게 유혹되었다. 그러니까 잘못 낚인 거다. 그리스의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낚였던 것처럼 말이다. 8월 말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선생님과 저녁 식사를 하며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고깃집에 ..

과학철학 2022.09.19

경상국립대학교 과학철학 강의

나는 올해 9월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철학과 소속의 시간강사로서 강의를 하고 있다. 담당하는 과목은 3과목으로서, ‘비판적 사고’ 2과목과 ‘과학기술과 철학’ 1과목이다. 예전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매년 봄 학기에) 대구과학고등학교(영재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과학철학’ 과목을 가르친 적이 있다. 2020년 가을에는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대학원에서 실질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철학’ 수업을 진행했으나, 그때는 100% 화상강의로 진행했다. 대학에서 대면으로 가르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1주차 수업은 태풍 ‘힌남노’로 인해 화상강의로 진행했고, 2주차 수업인 어제(2022. 9. 13.)는 경상국립대학교 통영캠퍼스에 방문하여 해양과학대학 소속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오래간만에 진..

과학철학 2022.09.14 (2)

전통의 계승자

오늘은 2022년 추석이다. 우리 가족은 어제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이동하여, 오늘 아침 차례상을 차려 고조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추석 인사를 드렸다. 새로운 해가 시작하는 날(설날)과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는 날(추석)에 온 가족들이 모여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기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좋은 문화적 관습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설날과 추석의 본질이지, 차례상을 차리느라고 고생하거나 명절 때마다 친척들끼리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은 그 본질이 아니다. 나는 조상님께 절을 올리며 나의 박사학위 논문이 잘 통과되기를 빌었다. 내가 생각해도 분명 잘 쓴 논문은 아니지만, 그 누구처럼 다른 사람의 글을 허락 없이 베끼지는 않았다. 나의 논문은 처음부터 끝까..

과학철학 2022.09.10

서울대학교 철학과 강진호 교수님의 퇴임사

안녕하세요. 철학과 강진호 교수입니다. ​ 1. 이미 소식을 들어 알고 있는 학생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연구와 공부에 전념하고자 지난 1학기를 마지막으로 교수직을 사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7월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행정적인 절차가 완료되어 이번 9월 1일자로 사직 처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 서울대학교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이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서울대학교 교수는 마땅히 세계적 수준의 연구와 교육을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 나아감과 물러섬에 있어서 결코 성급하거나 경솔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교수직을 사임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제 자신 오랫동안 깊이 숙고하고 고민한 끝에 이루어진 결정임을 알립니다. ​ 제가 2006년..

과학철학 2022.08.13

철학사를 추적하는 탐정

물리적 직관을 수학적 이론으로 번역하는 과정에는 여러 요소가 개입된다. 물리적 직관은 수학적 이론보다 더 많은 내용을 질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에 직관 속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추려내어 이론화시켜야 한다. 이와 같은 이론화 작업에 필요한 수학 이론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면 참 행운이겠지만, 만약 이론이 없으면 직접 만들어야 한다. 이론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잘 찾아보면 유사한 개념 혹은 이론이 있다. 인간 지성의 문제의식은 시대적인 성격이 강해, 동시대의 뛰어난 지성 중 비슷한 직관과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실로 미적분도 그러했다. 뉴턴의 경우는 물리적 직관보다는 수학적 추론..

과학철학 2022.08.10

논리경험주의의 역사와 철학 연구

1950년대에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유엔 원조를 받았고, 원조 물품 중에는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라이헨바흐의 대중적인 책 [The Rise of Scientific Philosophy](1951년)는 유엔 원조와 함께 우리나라로 유입됐다. 이 책을 최초로 번역한 학자는 전두하 선생이었다. 이때는 미국에서 논리경험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논리경험주의가 거의 ‘죽은’ 것으로 평가되었던 197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슐리크, 라이헨바흐, 카르납의 저술들이 본격적으로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 번역된 책들도 있긴 했지만, 그 책들은 당대의 과학철학자들로부터 그 진가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미 당시에는 영국 런던정경..

과학철학 2022.08.02

과학철학 연구자의 자리

예전부터(1984년부터) 있었던 서울대학교의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대학원)은 최근 과학학과(대학원)로 바뀌었다. 과학학과로의 개편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과학학과가 학부 과정에서부터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학부에서 자연과학, 공학, 인문학, 사회과학 등을 배운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대학원에서 과학학을 공부하면 된다. 그런데 과연 과학학(Science Studies)이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과학의 역사와 철학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대학생들의 관점에서는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함께 공부할 때 과학을 더 친숙하게 여기고 과학의 내용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과학기술정책이 있다. 우리나라를 이제 과학기술 선진국이라고 볼 수 있을 ..

과학철학 2022.07.05

강형구, 과학철학의 친구

최근에 나는 국내의 2개 철학 학회로부터 학술 논문심사 의뢰를 받았다. 내가 논문심사를 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논문심사를 끝냈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 또한 그 초고가 완성되었다. 이 초고가 논문심사 과정에서 얼마나 수정될 것인지 지금으로서 잘 알 수 없지만, 초고를 계속 수정해나가면 졸업은 가능하리라고 예상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졸업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나는 내가 뛰어난 과학철학 연구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 역시 우리나라 과학철학의 연구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 그래서 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계속 과학철학 연구 활동에 참여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계속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한스 라이..

과학철학 2022.06.24

과학으로부터의 자유

내가 서점과 도서관을 좋아했던 것은 그 속에서 일종의 ‘자유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점과 도서관에는 교과서가 아닌 다양한 책들이 있었고, 나는 그러한 여러 책을 훑어보며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마음대로 골라서 읽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서점과 도서관에서 느낄 수 있는 생각의 다양성과 자유로움이 내 마음을 이끌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도서관을 좋아했던 것은 그곳에 베스트셀러 이외의 책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발간되어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않고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은 나에게 이유 모를 애정을 느끼게 했다. 나는 도서관 열람실보다는 자료실의 서가가 좋았고, 자료실 구석에 놓여 있는 책상에서 책 읽는 것이 좋았다. 돌아보면 그것은 참 한가한 시간이었다.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과학철학 2022.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