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上善若水

강형구 2025. 6. 20. 01:36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2025 APPSA(Asia-Pacific Philosophy of Science Association) 참여를 무사히 마친 후, 타오위안 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발표에서도 역시 영어 말하기가 문제였는데, 다행히도 무사히 발표를 끝낼 수 있었다. 내가 무난하게 발표를 한 것이 아니라 청중이 너그럽게 나의 발표를 들어준 것(참아준 것?) 같다. 2년 후에는 일본 쿄토에서 APPSA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때는 다른 학자들에게 좀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그게 아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영어 말하기는 평소에 습관처럼 준비해야만 할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지만, 이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까 늘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배움을 청할 필요가 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 자신에 관한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내가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해야만 다른 사람도 당당하게 대할 수 있다. 결국 내 삶은 다른 누구의 삶도 아닌 내 삶이며, 내가 사는 삶이 나에게는 최고의 삶이다. 내 삶이 지금보다 더 발전하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내 삶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그저 지금의 나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을 뿐이다.

 

   과학철학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내가 학부 시절부터 계속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집요하게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연구에는 단점도 있다. 최신의 주제들에 대해서 혹은 다른 영역의 주제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큰 장점은 나의 성향대로 우직하고 꾸준하게 계속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과학철학을 한다면 라이헨바흐, 카르납, 헴펠 등과 같은 학자들을 연구해서 어떤 식으로든 연구 논문을 계속 지속적으로 쓸 수 있다. 이 학자들은 현대 과학철학의 원조들이라고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철학이라는 철학의 한 분과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들은 계속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연구 분야가 지극히 확고하고 현재로서는 한국에 (더 넓게는 세계적으로. 왜냐하면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라이헨바흐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라이헨바흐 연구자가 거의 없으므로 나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계속 이 연구를 해 나갈 수 있다. 그와 더불어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처럼 나의 연구 분야가 뚜렷하므로 내가 굳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거나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나의 연구 방식이 옳다는 것은 아니며 그저 이것은 과학철학을 연구할 수 있는 가능한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다른 학자들과 대화하며 그들과 ‘논쟁’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했다. 동시에 나는 매우 사려 깊고 친절하기로 유명했던 과학철학자 헴펠을 생각했다. 헴펠의 글은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유지하는데, 이는 그의 성격 혹은 인품과도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왜 굳이 싸우려고 하는가? 이와 더불어, 왜 굳이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동맹을 맺고 세(勢)를 키우려 하는가? 싸우려고 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억지스럽게 세를 키우려고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上善若水. 다른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지만, 늘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자신의 길을 쉼 없이 간다. 물은 만만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물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내가 잊어버리지 않고자 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확고하고 단단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나의 연구 주제에 집중해, 그 주제와 관련해서는 이 세상의 그 누구와 대화해도 대등하고 깊이 대화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려 한다.